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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님께 보고 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 14주년 추모사

부자공간 2023. 5. 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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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노무현 대통령 14주년 추모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 14주년 기념사 유홍준 전 문화재 청장의 추모 기념사 "오늘 저는 추도사가 아니라 지난가을 저 앞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을 개관함으로써 묘역 공사가 14년 만에 완공되었음을 노무현 대통령님께 보고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14년 전 이날 부여 시골집에서 잡초를 뽑다가 서거 소식을 접하고 방송을 통해서 유서에 남긴 글 "삶과 죽음의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아주 비석 하나만 남겨놓아라' 구절을 대하면서 이때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은 속으로 유홍준 청장에게 부탁해서 오라고 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 즉시 봉하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권양숙 여사님과 문재인 장례위원장을 만나서 이 일을 제가 맡겠다고 자원을 하고 우리 시대 최고 문화 예술인으로 구성했습니다. 따로 마련된 예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얼마가 들던 경비를 어디서 조달하든 관계없이 우리는 우리 시대의 문화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부끄러움 없는 공간으로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옛말에 후대 사람이 오늘을 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옛날을 보는 것과 똑같다는 말을 머리에 새기면서 후대인들이 여기를 찾아올것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그리하여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말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것을 이 묘역의 기본으로 삼있다.

 

그리고 우리는 전통에 기초한 현대 묘역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하트마 간디. 호찌민. 발터 벤야민 등 세계 유명 묘역 30곳을 검토하였고 삼국 고려 조선시대 왕릉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 것은 고구려시대 고인돌에 근거해서 봉분을 너럭바위로 새기고 무덤 위에는 지관 스님이 꾸밈없는 글씨체로 쓴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만 새겼습니다. 

 

무덤 안에는 납골당과 지석 그리고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 담긴 CD를 봉안하였습니다. 그 안에는 참여정부의 철학도 담았습니다. 제가 문화재 청장으로 부임되고 얼마 안 되어 노대통령은 어느 날 저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문화재 청장도 참여정부의 국정 기본 방향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정경유착 뿌리 뽑는다. 나는 기업인 돈도 안 받고 세무사찰도 안 하겠다.

 

둘째는 영호남 갈등 해소다.

 

셋째는 지방 분권으로 지방의 힘을 기르겠다. 그러면서 저에게 은퇴하면 지방에 가서 좋은 책을 써서 명작의 고향을 만들라면서 가능하면 어느 외딴섬 가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섬으로 귀향은 못 가겠어서 부여로 와서 문화유산을 안내하면서 지금 지내고 있습니다.

 

넷째는 특권과 반칙을 뿌리 뽑기 위해서 권력기관의 힘을 빼는 것이 제일 어렵다. 어디까지가 권력기관입니까?라고 물으니 검찰청, 경찰청, 국정원, 국세청, 그러시면서 한마디로 말해서 "전화받는데 기분 나쁘면 다 권력기관이다." 그러셨습니다. 

 

묘역은 전국 도로망의 이미지로 8도를 구획하고 그 사이는 종묘의 월대처럼 박석으로 장식했습니다. 박석은 고창, 해남, 부여, 울산 등 전국 8도에 가져오고 조선왕조의 박석 산지인 강화도 박석과 해주 박석도 실어왔습니다. 그 모두가 지자체 단체장과 석재상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추모 기간에 전국 곳곳 담벼락과 아스팔트 위를 장식했던 노란 리본의 추도문을 박석에 새기어 '아주 작은 비석'을 대신하기로 하였습니다. 박석에 추도사와 함께 이름을 새긴 분들의 성금으로 묘역 공사에 든 모든 비용을 충당하였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안토니오 가우디 사후 입장료로 계속 완공해 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묘역은 박석에 추도사를 헌정한 국민성금으로 이루어졌다는 또 다른 전설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궁할 때 쓰려고 아직 팔지 않은 박석이 4천 장 남아 있습니다.

'작은 비석 건립 위원회'는 이렇게 임무를 끝냈지만 묘역 공사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주변의 녹지와 공원 그리고 대통령기념관 건립을 위하여 '봉하마을 공간조성 위원회'로 확대하여 계속 일했습니다. 이때 문재인 대통령도 위원으로 참여하여 제 밑에서 일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자연생태공원부터 주변에 식재된 나무들, 봉하마을의 정비사업, 여민관을 비롯한 부속건물의 건립, 모두가 지난 10여 년간 끊임없이 정성스럽게 계획되고 검토되고 시공되어 오늘의 노무현 대통령 묘역이 조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노무현대통령 기념관이 완공되어 유품과 영상자료로 노 대통령의 삶과 위업을 기리는 공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기념관 준공과 함께 작년 가을 '봉하마을 공간 조성위원회'가 해체되었습니다. 14년간의 대역사가 이렇게 마무리된 것입니다.

저는 이 묘역 공사에 우리나라에서 최고가는 전문가들이 수없이 봉하마을로 내려와 논의했던 그 헌신적인 봉사와 예술가들의 흔쾌한 기증, 그리고 국민성금으로 이루어졌음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께 보고 드리는 것이 그분들의 노고에 값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참여정부에서 4년간 문화재청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사후 14년간 노 대통령과 함께 지내고 이제 비로소 청장에서 18년 만에 해임된 기분입니다.

묘역 조성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을 새기는 일이었습니다. 글씨는 노 대통령의 학교 선배이기도 한 신영복 선생에게 위촉했습니다만 어떤 구절을 새길까 고민 고민하며 대통령의 저서를 읽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한없이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 글을 새겼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촛불혁명이 바로 이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오늘, 지금 우리는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을 새기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어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노무현 대통령 묘역은 이렇게 만들었다. 유홍준 문화재 청장 "2023년 14주년 추도사"  

■ 건축가 故 정계홍. 승효상

■ 조경설계가 정영선

■ 역사학자 안병욱

■ 화가 임옥상

■ 시인 황지우

■ 실무 김경수 비서관

■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꾸밈없는 글씨체로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

■ 납골함은 박영숙의 백자함

■ 조각가 안규철의 연꽃모양 석함

■ CD 보관함은 김익영의 백자합

■ 지석은 보령 오석에 새겼다.

■ 그 모두가 기증받은 것이었습니다

■ 시공은 인간문화재 후보인 윤태중 석공이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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