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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세기의 여인 은퇴 후 자선활동... 화장기 없는 얼굴 ...?

부자공간 2022. 11. 14.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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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세기의 여인 은퇴 후 자선활동... 화장기 없는 지적(知的) 얼굴...?

당대 '최고의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며 현재까지도 '세기의 미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를 꼽으라면 1위를 다툴 정도로 눈부신 외모를 가졌다. 그녀는 순수 성형하지 않은 얼굴이다. 그리고 그녀도 자식을 아들 2명 낳은 엄마이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이 더욱 따뜻하고 자원봉사 시절 화장기 없는 순수하고 지적이면서 해맑은 눈빛얼굴이 사진으로 많이 남아있다.

 

오드리 헵번 아들 '션 페러' 오드리 헵번이 배우 멜 페러와 결혼해 낳은 첫 번째 아들로, 헵번이 세상을 떠난 1993년부터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등 어머니와 관련된 재단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두 번째 아들은 1969년 로마의 휴일 촬영 때 따라다녔던 팬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인 안드레아 도티(Andrea Dotti)와 결혼하여 '투카 도티'를 얻게 된다. 그녀는 아들만 2명이다. 은퇴 이후에도 자선사업가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1993년 1월 20일 결장암으로 향년 63세 사망하였다. 

 

오드리 아들과

 

헵번이 선보인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 옷차림은 현대에도 꾸준히 유행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트레이드마크였던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강조한 메이크업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 데뷔작 로마의 휴일에서 선보인 단발 헤어컷 역시 "헵번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헵번스타일은 단순히, 의상, 화장 등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의 행동도 포함한다. 대표적으로 '로마의 휴일'에 나온 커피잔을 들 때 잔 받침을 같이 든다든가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온 창가에 앉아 'Moon River'를 부르는 모습 등 어쩌면 말로 표현하기는 극히 어려우면서도 별다를 게 없는 행동이지만, 직접 보면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이 모든 것은 햅번만의 스타일이다. 

 

'세기의 여인 오드리 헵번'은 은퇴 후 자선활동은 그 누구도 그녀를 따라갈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세기의 여인, 귀여운 여인으로 헵번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녀의 은퇴 후 삶은 진실 그 자체이다. 화장기 없는 지적(知的)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그녀의 마음을 그대로 보인다. 워낙 근본 타고난 얼굴이 미인이라 나이가 들수록 지적(知的)이고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여인이다. 나이가 들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충분히 공경받을 자격을 가진 여인이다.  

 

오드리 헵번

 

그녀는 암 투병 중에도 소말리아를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한 것이 유명하다.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운동과 자선사업 활동에 참가하고 제3세계 오지 마을에 가서 아이들을 도와주었으며, 그런 활동에서 미소 짓는 노년의 헵번이 보여준 모습은 젊을 적 미녀의 이미지 못지않게 유명해졌고,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또한 유니세프에서 주최한 대니 케이 국제어린이 예술 경연 대회가 열리게 된 결정적 계기도 대니 케이가 아닌 오드리 헵번이었다.

 

오드리 헵번은 나치 독일이 저지른 만행의 피해자들 중 하나였다. 네덜란드가 해방된 후 연합군과 유니세프가 지원해 준 연유를 허겁지겁 먹다 탈이 났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기간 고향 네덜란드에서 나치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에 적극 가담했던 것이 밝혀졌다. 이때의 경험을 아들에게 "연합군 병사를 돕는 것이 위험했으나 스릴 넘치는 것이었다. 발각될 경우 전 가족이 위험에 빠질 수 있었던 만큼 공포감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경험이 자선사업 활동을 하는 계기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도 한때 전쟁 난민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건이다. 

 

오드리 헵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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