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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린 ‘애버팬 사건’은...

부자공간 2022. 9. 2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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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버팬 사건’ 영국 여왕 스스로도 용서하지 않았던 인생 최대의 실수 

영국판 세월호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지방정부는 영국 여왕이 이 곳을 방문해 피해자들을 위로해 주길 요청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에 응하지 않고 대신 남편 필립공을 보냈다. 

 

이에 따라 언론이 거세게 비판하자 여왕은 9일 만에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뒤늦게 현장을 방문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여왕이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린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다. 이 에피소드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진심으로 반성했고, 이후 사고가 발생한 현장은 반드시 직접 방문했다. 그는 애버팬을 평생 동안 4번 방문함으로써 자신의 실수를 뉘우쳤다. 그는 생전에 "애버팬을 바로 방문하지 못한 것이 항상 후회된다"고 말했다고 마카는 전했다.

 

당시 영국 총리 해럴드 윌슨은 사고 당일 왕실 전용기를 대여하여 사고현장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하였다. 그런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현장 방문을 바로 계획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영국 노동당 등에서 큰 비판을 받고 뒤늦게야 사고현장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도 있었다.

 

일화(逸話)로 사고 전날, 애버밴 지역의 아이들이 "친구들이 죽는 꿈을 꿨다." 며 등교를 거부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아이들을 구조한 정신과 의사 존 바커는 이러한 사례를 듣고 예지몽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애버밴 참사 예지몽을 겪었다는 편지 76통을 받았다.

 

애버밴은 웨일스 지방으로 그 지역은 19세기 산업혁명 시기부터 석탄과 철광석 같은 귀중한 자원들 대량으로 채굴되면서 광업이 크게 발달한 지역이다. 애버밴 지역은 웨일즈 남부 지역 산악 지대의 계곡 경사면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로 탄광 사업이 발달하며 사건 당시에는 약 5000명의 인구가 거주하던 규모 있는 마을이었다.

 

폐기물 봉우리들은 모두 마을 위쪽에 위치하여 만약 붕괴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명피해를 야기할 것이 분명했다. 채광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마을 위쪽에 위치한 탄광 주변에서는 여러 종류의 폐기물들이 발생되기 시작했다.

 

탄광 지역은 석탄 찌꺼기 산으로 뒤덮여 풀 한 포기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수준까지 오염되었고, 이로 인해 인근 지역들은 '죽음의 땅'이라는 별명까지 생겨버리게 되었다.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폐기물 더미는 산사태를 발생시키며 계곡을 따라 마을 쪽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1966년 10월은 애버밴 지역에 집중 폭우가 내리던 시기였다.

 

10월 20일 밤 시간에 들어 폭우로 인해 7번 봉우리의 높이가 3m 가량 내려앉았는데, 다음 날인 21일 오전 7시 30분 광산으로 출근한 작업반 인원들은 봉우리의 상태가 심상찮음을 감지하고 광산 관리자를 호출하였다. 관리자 역시 봉우리의 상태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우선 당일 작업을 정지하고 봉우리를 점검하고 위치를 이동시키는 조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산사태는 계곡 마을에 있던 Pantglas 초등학교와 중학교, 주변에 있던 가옥 18채를 파괴하고 나서야 힘을 잃고 잠잠해졌다. 당시 초등학교에는 방학을 하루 앞두고 등교한 학생과 교사들로 가득했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출석을 받는 와중에 산사태가 학교 건물 전체를 집어 삼키고 말았다.

 

사건 이후 집계된 사망자는 144명. 이들은 7세에서 10세 사이의 어린아이 116명 28명의 성인들이었다. 산사태가 발생시킨 엄청난 굉음은 천둥번개나 제트기의 소음에 비견될 수준이었다. 놀란 주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왔을 때 마을 한 곳이 참혹한 사고 현장으로 변해있었고, 지역 경찰과 소방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손과 도구를 이용해 잔해를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인근 광부들도 집결하여 구조 작업에 나섰고, 시신과 생존자들이 수습되어 각각 예배당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보도 등을 통해 현장에 수천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고, 영국 육군 등지에서도 구조 인원이 파견되는 등 구조 작업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산사태가 수습되는데는 약 일주일의 시간이 소모되었다.

 

이후 사건조사위원회가 발족하였으나 NCB는 여전히 사건 책임을 부정하였다. 14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에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NCB 간부나 직원 그 누구도 기소되거나 징계를 받지 않았다.

 

NCB는 유족들에게 50파운드의 보상을 제시하였으나 비판을 받자 500파운드로 액수를 올려 보상안을 제시하였다. 유가족들은 NCB의 뻔뻔한 태도에 분개하였으나 NCB는 사과도 책임도 없이 비판에는 무시로 달관하기만 했다. 지역 회복을 위해 기금이 설치되었고 몇 개월만에 8만 건이 넘는 기부금이 접수되어 1,606,929파운드의 액수가 모집되었다.

 

그러나 지급 위원회는 지급 액수를 두고 논쟁을 벌이며, 희생자와 유족과의 생전 관계를 조사하여 유족의 정신적 고통을 정량화해야 한다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제대로 돈을 내놓지 않았다. 이 당시 빼앗은 15만 파운드는 사건 발생 이후 30여년이 흐른 1997년에서야 기금에 반환되었다. 이나마도 30년이 흐르면서 물가 상승이나 이자 비용 등은 모두 무시되었고 정확하게 15만 파운드만 반환되는 등 정부 당국은 최후의 최후까지 유족의 마음을 후벼파기만 했다.  - 나무위키-

 

 

▶ 최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스스로도 용서하지 않았던 인생 최대의 실수가 ‘애버팬 사건’이라고 스페인 언론 마카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웨일스 지방 애버팬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1966년 10월 발생했다. 이 사고로 144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116명이 중학생이었다.

 

이 사건은 인간의 탐욕과 관리 부실로 석탄 폐기물이 작은 탄광 마을을 덮친 사건이다. 석탄 회사가 규정을 위반해가며 몇 배나 높게 산처럼 쌓은 석탄 폐기물이 연이은 강우로 인해 무너졌고, 하필 인근 학교를 덮쳐버렸다.이 사건으로 인해 재학생 116명이 희생됐다.■

 

 

 

엘리자베스 여왕 자신도 용서하지 않았던 생애 최대 실수는?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최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스스로도 용서하지 않았던 인생 최대의 실수가 ‘애버팬 사건’이라고 스페인 언론 마카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웨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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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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