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에너지가 육체를 엄습하다
하나님과의 조우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작은 계획을 여지없이 흔들어놓았습니다. 작곡을 위한 독일 유학의 꿈을 포기하게 했으며, 신학대학으로의 편입을 시도했었는데, 하늘은 그 길조차 막았습니다. 학교의 강의에 별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원리 연구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학 년 가을학기를 등록과 함께 수강신청은 했었지만 수업은 뒷전이었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원리 연구에 쏟았습니다. 한마디로 미쳤던 것이죠.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언감생심이었을 것입니다. 종교의 진정한 본질은 [영성-신성] 체험입니다. 종교는 ‘이성理性, leason’의 영역이 아닙니다.
1987년 9월 27일 1987년 9월 27일 오후 2시경은 예수님을 영적으로 체험한 이후 33 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원리강론』의 연구를 마치고 『통일사상 요강』 의 거의 끝부분인 교육론을 읽는 중이었습니다. 깊은 묵상에 침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의 씨인 ‘정자精子’라는 존재의 의미가 떠올랐습니다.
[정자]가 [난자]와 만나 [태아]가 되고, 그리고 [인간]으로 탄생하지만 미완성된 존재로서 완성으로 ‘성장발전’하면 아버지와 ‘친구’(뜻을 알게 됨-인간은 신의 정자)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자는 정충(벌레)에 불과한 존재인데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초야初夜 엄청난 성령의 에너지가 육체를 엄습했다. 7차례나 연거푸 육신 안으로 주입되면서 몸(세포-살)이 집 체만 하게 부풀려졌습니다. 세포가 기뻐서 춤을 췄습니다. 그때는 그 현상이 성령이라는 것조차도 몰랐을 때입니다. 사실 그것을 인격적으로 표현하자면, 성령은 하나님 어머니로부터 받는 안마, 또는 애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성령이 엄습한 이후, 곧바로 하늘의 신령한 빛이 북두칠성에서 세 줄기나 연이어 사선을 타고 내려와 정수리에 찡~찡~찌지~! 하고 내리꽂았습니다. 그 신령한 빛은 뼈를 파고들었습니다. 3수는 완성의 수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바위에서 기도하던 중에 하늘에서 신령한 빛이 사선을 그으며 임하고 있는 것과도 너무나 흡사했습니다.
그것은 33일 전에 있었던 예수의 영적 부활 체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경이적인 광적 전율이었습니다. 아니 공포요, 환희요, 두려움이요, 희열이었습니다. 부들부들 떨었다는 표현과 함께 그렇게도 기쁠 수 없었으며, 인간의 언어로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실체 앞에 인간의 언어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아마 그때 신령한 빛에 필적할 만한 가공할 성령聖靈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나의 육체는 불(신령한 하나님의 빛)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눈을 떴습니다. 육체 안에 머물러 있던 신성한 에너지가 순식 간에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숫제 그것은 숫처녀의 첫 경험이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초야初夜를 치른 것입니다. 혼인 잔치를 한 것입니다. 인간 [영혼(영성)]의 ‘각시’와 존재자 [신령(하나님)]의 ‘신랑’이 결혼해 첫 성교 性交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마디로 일방적인 강권이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입니다. 나의 의지와는 아랑곳없이 강탈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싫지 않았습니다. 그 쾌감이 환상적이어서 오히려 더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미 나는 그때 하늘의 씨를 받아 수태受胎했던 것입니다.
그 수태의 기간이 2020년을 맞이한 오늘까지 만 33년입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 하나님은 나의 창조적 아빠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재창조적 신랑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빠라 고 부른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 안에 간직하고 있는 [영성]이 성년기에 도달하면 하나님이 어김없이 찾아와 결혼하게 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神-하 나님)은 인간의 만왕의 왕이신 황제이신 것입니다. 인간들은 황후와 후 궁이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황후皇后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그 체험은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두 돌판(십계명)을 하사 받으면서 경험한 거룩한 하나님의 인印치심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성령과 신령과의 조우가 끝나고 방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런데 집 앞 대나무 숲의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뜨기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여전히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바람 한 점 없었는 데 말입니다. 아~! 모든 만물이 살아있구나! 그리고 하늘로부터 신성 한 에너지를 받고 있구나! 풀 한 포기 머리카락 한 올조차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는구나!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의 정자이며, 온 우주는 성령(하나님 어머니)의 태아이며, 만물은 하늘 부모의 자녀이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피조세계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인간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 이자, 소우주이니까요. 그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을 간직한 존재로서 앞으로 신 神이 되어야 할 가능태를 간직하고 있는 존귀한 생명체인데 말입니다. 성자가 되고, 신이 되기 위한 자기 노력이 인생이고 삶이라는 단순한 비결을 인식했습니다.
원리에도 비밀이 나는 대학을 마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원리 연구에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그로부터(예수의 부활 체험 이후) 3년 만인 1990년 7월 17일 필자는 졸업을 앞두고 경남 진주 처가의(10년간 처가살이를 했음) 옥상에서 신성한 세계, 즉 존재의 궁극적 본질에 대한 학문적 이론체계의 광맥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진리의 비밀은 원리 연구를 통하여 획득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원리가 어느 정도 기반이 된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성을 넘어선 신성의 계시였던 것입니다. 7차원을 넘어서는 반야般若의 지혜와 보혜사 성령의 지혜는 자연을 넘어선 초월적 세계이기 때문에, 하늘의 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내리는 것일 뿐, 나 자신의 자발적 노력으로는 결코 도달 하기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존재의 비밀은 러셀(B. Russell, 1872~1970)의 『서양철학사』하권을 읽어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콩트(A. Comte, 1798~1857)가 개념 화한 키워드가 지혜의 문을 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었죠. ‘부 모’, ‘자녀’, ‘친구’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념으로 인하여 영감 inspiration이 임하면서 <창조와 재창조>, <창조적 성장>, <보호와 책임>, <성장단계별 외적 역사, 과정 역사, 내적 역사役事>의 존재의 “4 가지 법칙”이 부지불식간에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확철대오廓撤 大悟, 즉 돈오頓悟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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