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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피보나치' 이탈리아 피사 수학자 "수열의 발견"

부자공간 2023. 11. 2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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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피보나치' 이탈리아 피사 수학자 "수열의 발견"

레오나르도 피보나치는 1170년경 이탈리아 피사에서 태어난 수학자이다. 피보나치라는 이름은 그의 성이나 이름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구글리엘모 보나치의 별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보나치는 젊은 시절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10년 동안 머물면서 이슬람 세계의 수학과 과학을 배웠다. 1202, 그는 유럽으로 돌아와 아라비아 숫자 체계와 이슬람 수학의 원리들을 소개한 책인 **산반서(Liber Abaci)**를 출판했다. 이 책은 유럽의 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피보나치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로 만들었다.

 

피보나치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피보나치 수열의 발견이다. 피보나치 수열은 01로 시작하여, 앞의 두 수의 합이 다음 수가 되는 수열이다. 예를 들어, 피보나치 수열의 첫 10개 항은 다음과 같다.

 

0, 1, 1, 2, 3, 5, 8, 13, 21, 34

피보나치 수열은 자연계에서 널리 발견된다. 예를 들어, 꽃잎의 개수, 나선형의 수가 피보나치 수열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피보나치 수열은 예술,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피보나치는 수학뿐만 아니라 과학, 경제,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천문학과 지리학에 대한 저서도 출판했으며, 유럽 최초의 통화학자이기도 하다.

 

피보나치는 1250년경 피사에서 사망했다. 그는 유럽의 수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죽은 후에 피보나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굴리엘모는 피사의 고문이었기 때문에 베자이아(Bugia)에 있는 교역소에 배정되었다. 어린 소년이었던 레오나르도에게 그곳의 여행은 도움이 되었다. 그곳에서 힌두-아라비아 숫자에 대해서 배웠다. 피사로 돌아왔을 때, 그 체계를 유럽에 소개하였다.

 

힌두 숫자로 수학을 하는 것이 로마 숫자로 수학을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자, 당시 아랍 수학을 배우기 위해서 지중해 지역의 국가를 여행하여 1200년 경에 되돌아 왔다. 1202년 그가 32세 되던 해에, 이를 집대성한 "주판 책(Book of Abacus)" 혹은 "계산 책(Book of Calculation)" 을 출판하였다.

 

레오나르도는 수학과 과학을 즐겼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초대를 받았다. 1240년 피사 공화국은 그의 다른 이름인 레오나르도 비글로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봉급과 영예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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