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지구 살리기 운동 본부 출현을 위하여
위대한 영혼 어머니 지구의 재생(再生)을 위해 우리의 참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교는 참회에 이르는 자기반성입니다. 자기반성을 위해 종교는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향한 내면적 반성이 급기야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고백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자기 존재를 깊이 반성하다 보면 자기반성을 위해 신성한 거울이 필요하게 되는 법입니다.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거울이 바로 경전(經典)이란 거울입니다.
오늘 시대의 종교는 복잡하고 각박한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을 위해 진정 자신을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는 산파(産婆)의 역할 기능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실존의 탄생을 위해 신성한 장소들은 명상(瞑想)과 정관(靜觀)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며, 사찰이나 교회당이나 성당의 건물들이 고요한 휴식과 자기 성찰을 위한 오아시스의 역할을 넘어서서 위대한 영혼들의 탄생을 위해 준비된 산파실(産婆室)이 되어야 하며 성직자(聖職者)들은 그 산파역(産婆役)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종교적 건물들은 대중 집회를 위해 장엄하기는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적 영성수련(靈性修練)이나 종교적 수양과 명상을 도모하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성한 종교 집회 장소를 찾아 예배나 미사나 예불을 드립니다만 정작 그들 상처 입은 인간 영혼을 포근한 어머니의 가슴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시원적(始原的) 원시림(原始林)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도원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고요하게 자신을 비우고 신의 음성을 들어야 할 장소가 오히려 시끌벅적한 대중 집회 때문에, 집단적 황홀은 가능할지 모르나 위대한 영혼이 걸어 나갈 길은 예비해 줄 수 없게 되었다고 봅니다.
종교의 쇄신을 위해 참회의 오솔길을 스스로 걸어 나갈 순박(淳朴)한 순례자들이 나타나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조(觀照)하고 조명(照明)하는 뼈아픈 반성과 성찰이 몸에 익숙해지기까지 참회의 리듬은 자연스러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종교의 일대 쇄신을 위한 반성 영역은 종교의 현실 상황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오히려 우리가 찾아야 할 종교의 내면적 욕구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유익하리라 봅니다.
종교는 인간을 외향적으로 드러내려는 지식의 함양보다는 내향적인 진선미(眞善美) 혹은 도선미(道善美)의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시대를 가장 행복한 시대정신(時代精神)으로 살아 갈 수도 있고, 가장 불행한 종말의식(終末意識)으로도 살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종교는 불행을 행복으로, 역리를 순리로, 모순을 합리로 변형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는 우리의 이런 참회가 종교의 참된 반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가끔 민족 전통 속에 흐르고 있는 위대한 종교 정신의 유산을 상실한 오늘의 시대를 한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반성은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종교의 유산인지를 다시 발견하게 하리라 믿습니다.
동이족(東夷族)의 종교적 자존심을 되찾아야 할 역사적 시간이 왔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십시오. 주저하지 말고 잃어버린 동이족의 실존세계를 과감하게 다시 찾아낼 수 있는 참회의 길이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기 위해 철새처럼 자기가 살던 둥지를 떠날 차비를 해야 합니다. 동굴 속에 갇혔던 현실을 떠나서 참된 종교적 자아를 되찾기 위해 모험은 시작되어야 하겠지요.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을 벗어나는 길은 영원을 향한 첫 출발점이 되는 법입니다. 바로 그 출발점은 영혼의 여행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영혼의 여행이 주는 보증 수표는 영혼의 순수성(純粹性)과 투명성(透明性)을 되찾는 데 있습니다.
영혼의 여행은 실낙원(失樂園)을 되찾는 복락원(復樂園)이요, 잃어버린 지혜진주(智慧眞珠; Wisdom pearl)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여행길에 도전한 수많은 순례자들의 정신을 높이 평가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란 결국 영혼의 순수성과 투명성을 순례의 여정(旅程)을 통하여 찾고 돌아온 실존들입니다. 유리잔과 같이 투명성을 체험하면서 항상 진리의 빛을 터뜨릴 수 있는 실존은 금화(金華)로 둘러싸인 무지개 몸(Rainbow body)을 지니게 되는 법입니다.
무지갯빛을 지닌 존재를 팔등신불(八等身佛) 혹은 변형된 몸을 지닌 존재자(存在者)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영혼의 순수한 투명성을 되찾았을 때 위해한 영혼 어머니 지구를 다시 만날 준비가 된 셈입니다.
영혼의 투명성을 찾기 위한 순례자들은 자기를 물로 씻는 행위로써 세례의식(洗禮儀式)이나 침례의식(浸禮儀式)을 통과합니다.
그러나 풍진세상(風塵世上)에서 덕지덕지 묻은 때나 끈끈한 정감(情感)들이 한번만 씻는다고 깨끗해질 수 있겠습니까? 씻고 또 씻어야만 흰 눈처럼 깨끗해지지 않겠습니까? 물로만 아니라 끝임 없는 통분(痛憤)과 회오(悔悟)의 눈물로도 씻어야만 영혼은 투명해지는 법입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富貴榮華)와 안심입명(安心立命)만을 꾀하던 나의 오욕(汚辱)을 씻어내는 작업은 마치 각질(角質)을 벗겨내는 듯 한 아픔이 동반된 영혼의 세척이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영혼의 세계란 씻으면 씻을수록 순수해지는 법이며, 닦으면 닦을수록 빛나는 법입니다.
유독 동방의 빛을 따라 살아가는 동이족(東夷族)이 대대로 흰 한복과 색동저고리를 입었다는 풍습은 순수하고도 투명한 영혼의 세계를 깨끗이 씻은 몸으로 드러내 보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친구로 만나는 종교적 교감지대(交感地帶)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영혼과 영혼이 서로 교차(交叉)하는 영성(靈性)을 종교적 차축(叉軸)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영혼과 영혼이 만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만남은 축복된 만남입니다. 이와 같은 만남은 서로가 모체(母體)가 되고 잉태(孕胎)가 되어 보다 더 높은 영혼의 위상(位相)을 형성시켜 주는 신비(神祕)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영혼과 영혼이 마주치는 영성의 교감은 한없는 참회(懺悔)의 눈물 없이는 불가능한 만남의 신비일 것입니다. 친구로서 만나는 영혼은 나의 가슴으로 안을 수 있는 심성은 내가 위대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작아지고 겸손해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모든 존재를 친구처럼 감싸 안고 넘어설 수 있는 초월적(超越的) 실존(實存)이 탄생될 때 위대한 영혼 어머니 지구는 또다시 영광의 면류관(冕旒冠)을 쓰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영혼 어머니 지구는 그의 몸에서 태어나는 별빛 같은 영혼들을 위해 아름다운 찬가(讚歌)를 불러 주리라 믿습니다. 어머니 지구를 재생시키기 위한 참회의 순례는 축복받은 동이족(東夷族)의 종교적 사명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우선적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팜필리아 알바트로스 동산에서
2024년 9월 8일
신천옹信天翁
'세상이야기(정치. 사회. 정보. 문화. 철학. 연예. 여행. 영혼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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