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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동시성 & 신문명의 전주곡

부자공간 2022. 5. 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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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의 전주곡 "역사의 동시성"

2. 역사의 동시성 & 신문명의 전주곡 한반도는 제2의(영적) 이스라엘입니다. 한민족의 역사를 1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조선 말기 이 씨 왕조의 타락상을 굳이 벗기지 않더 라도 부국강병을 멀리했던 민족의 앞날은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이 스라엘 민족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애급 고역)을 했듯이, 조선은 일본 식민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8.15 해방을 맞이하여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는 대탈 출Exodus(출애굽) 한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 광야 노정 중에 모세는 두 돌판을 받아왔지만 깨트립니다. 그리고 다시 받아 내려와 10 계명으로 삼습니다.

 

어쩜 그렇게도 우리와 닮았습니까? 전율이 느껴집니다. 이처럼 모세의 두 돌 판의 상징이 우리에게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를 뜻했던 것입니다. 이 둘도 결국 깨트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 돌판을 받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양 체제의 장점을 결합한 <중화체제-민주주의 4.0>로 말입니다. 광야 노정을 거친 이스라엘 민족은 비로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가나안)으로 입성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가나안은 무엇 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세계평화의 모델이 될 남북의 평화적 통일입니다. 평화적으로 통일된 한민족은 젖과 꿀이 흐르는 21세기의 ‘신문 명(이상사회)’을 이 땅 위에 구축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는 양체제의 장점을 결합한 “공생(상생)의 국가”가 될 것입니다.

 

신문명(민주주의 4.0 평화통일)의 전주곡 UN 미래포럼의 회장 제롬 글렌은 “대망을 꿈꾸는 자가 미래, 즉 미래예측의 기술을 모른다면 큰 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사의 변화와 그 방향성을 알지 못한다면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와도 같습니다.

 

관계성의 비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처삼촌 벌초하듯이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 등의 속담들은 인간관계의 심리를 해학적으로 빗댄 말들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관계성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성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났다.’라는 얘기에서 보듯이, 같은 아들인데도 장자長子와 차자次子가 달라요.

 

부부관계도 마찬 가지입니다. 부부는 무촌無村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금이 가게 되면, 소위 0.5촌을 넘어서게 되면 통장을 따로 찹니다. 이처럼 인간만이 아니라 세상에는 형태가 다를 뿐 모든 것이 관계성을 갖게 돼요.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모든 일들을 인격적 관계로 파 악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세상만사가 인격적 관계로 얽혀 있어서, 그 어떤 일일지라도 정확한 인격적 관계의 비밀을 감지할 수만 있다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국가도 마찬 가지입니다. 크게 보아 남·북 관계는 부부관계와도 같고, 한·일 관계는 형제관계와도 같으며, 한·미 관계는 부자관계와도 같아요.

 

또한 한·중 관계는 처가의 관계와도 같고, 그리고 러시아와의 관계는 이웃이며, EU는 멀리 있는 친척과도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만약 남·북이 통일된다면 한·미 관계는 형제관계로 한·일 관계는 부부관계로 한·중은 사돈으로, 그리고 다른 나라는... 등등 말입니다. 모든 갈등 해결의 근본 원리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풀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없습니다. 사랑은 헌신이고 봉사이며, 희생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오래 참음이며 절제이며 용서입니다.

 

인간의 성장과 국가의 성장 내가 새롭게 풀어낸 ‘창조적 성장론’이라는 가설은 ‘한 인간의 성장’을 닮아 ‘인류’도, ‘국가도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계절의 절기처럼 말입니다. 헤겔은 역사를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라고 했지요. 전체성으로 볼 땐 그 말이 맞아요.

 

그런데 나는 지구촌에 200여 개의 국가가 있는데 모두 다 똑같은 법칙으로 전개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까 역사의 중심과 주변으로 분리되더라는 것이죠. 마치 나무의 기둥과 가지가 역할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어떤 국가는 친아들처럼 중심에 있고, 또 어떤 국가는 의붓아들처럼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 사명을 받은 나라는 절대정신(주체자)의 인격적 적자(嫡子) 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인간적인 자유의지가 자유롭지 못해요. 다시 말해 역사 전개의 절대적 책임인 장자권, 즉 상속권을 갖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하늘의 뜻을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역사의 중심 국가는 절대자의 뜻인 새로운 역사의 씨를 잘 전수받아 재창조해야 해요. 만약 그 책임을 거부하면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된다고요. 그렇게 볼 때 우리 민족의 역사가 예사롭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21C를 맞이하기 전 약 1세기 전으로 한국 역사를 되돌아봅시다.

 

마테오 리치 신부와 언더우드, 알렌, 헐버트의 선교, 그리고 역사의 뜻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이탈리아의 신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중국 명名 이 마두利瑪 竇)는 한국의 천주교 성립에 결 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뒤 이어 연세대학교의 전신 연희 전문학교와 YMCA 및 서울 새문안교회를 설립한 미국의 언더우드(H. G. Underwood - 한국 명 원두우元杜尤), H. G. 아펜젤러, 세브란스병원의 시초 H. N. 앨런, 「한국 평론」을 쓴 헐버트 (H. B. Hulbert) 등의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하늘은 이 민족에게 새로운 영적 종교 문화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했습니다.

 

다시 말해 역사는 이들 선교사를 이 땅에 보낼 때부터 이미 한반도를 하늘의 장자로 세우기 위한 작전을 꾸몄던 것이었습니다. 마치 중 학생이 고등학생으로 진학하게 되면 차원이 다른 스승에게 배우게 돼 듯이 하늘은 먼저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이 마두’라는 새로운 교사를 파송하여, 역사의 상속권을 주기 위한 씨를 이 땅 조선에 뿌렸 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지도자들은 훗날에 오게 될 장자권을 포기라도 하듯이 이상 사회를 위해 하늘의 아들로 개종한 천주교도들을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에 메달아 처참하게 도륙했어요. 왜냐하면 하늘의 아들(개종자)은 그렇지 않은 인간의 아들(권력자)의 적(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은 성장 섭리의 희생자요, 제물(순교)이 된 것입니다.

 

그 희생의 대가로 하늘의 아들들은 하늘나라에서 중생을 얻게 되지만, 인간의 아들들은 오래도록 남아 그만한 고통을 다른 방법으로 탕감하는 것입니다. 조선은 하늘이 선택하게 될 장자로서의 상속권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북아메리카 대륙에 내려주었던 장자권을 백의민족에게 장차 옮기려고 하는데 이를 감히 거부했습니다.

 

선의 독재자이신 절대자의 어명(御命)을 감히 어긴 것입니다. 하늘은 재창조(피조세계의 성장)의 창조(창조적 시나리오이기 때문에)에 있어도 모든 대상과의 타협을 거부합니다. 이것은 마치 허락 없이 자녀를 탄생시키는 우리의 부모처럼 말이에요.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로서의 한·일의 역사 우리는 지금 한반도 역사에 있어서 1905년의 을사늑약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1C는 옥 살이와도 같았던 조선왕조의 국치와 함께 동족상잔을 거쳐 평화통일의 앞날을 예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한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 개인이 처가살이나 종살 이를 해도 자신의 정체성까지 허물어트리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수천 년간 알뜰 히 쌓아왔던 찬란했던 우리의 문화는 일제 식민을 통해 통째로 맥없이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주권 상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비참함을 여실히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왕 밑에서 저항 한번 못해보고 고 역살 이를 했던 것과도 같습니다. 창씨개명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겠습니까? 그것은 감옥의 ‘수인 번 호’가 자신의 이름을 대신하듯이 나의 정체성의 부정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남의 집 종살이도 아닌 국가적 ‘깜빵 살이’라는 정체성의 부정을 조선은 당해야만 했겠습니까?

 

역사의 준엄한 뜻을 미리 알고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당하고 나서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역사 철학 연구 나는 일본에서의 세미나 참석 이후 자주 일본을 왕래하게 되면서 두 나라의 관련성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을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일반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나의 일본 연구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선 진화된 그런 외형이 아니라 역사 철학에 관한 내적인 것이었습니다.

 

외형적인 문명이었다 면 단연코 아메리카나 구라파(EU)이었겠죠. 왜냐하면 1988년 가을 미국 연수를 통해 받았던 선진 문명의 충격은 나를 미국으 로 유학 가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했으니 까요. 헤겔(G. W. F. Hegel)은 그의 『역사 철학 강의』에서 역사를 보는 방법론을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그 “첫째가 기록된 그대로 역사를 보는 것이다. 둘째가 반성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다. 셋째가 철학적 역사로서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제4의 눈-필자의 개념)로서의 역사를 보는 것이다.”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가져 던 것은 철학적 역사에 대한 세 번째 부분이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진화된 일본이라는 국가의 이면 (裏面) 연구로서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의 아이러니(irony)였어요. 인간의 원수와 역사의 보상 저 또한 청소년 시절 왕비 열전을 읽고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 해, 왜 놈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썼습니다.

 

우리의 오랜 전통문화를 무참하게 유린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저 일본의 풍요를 도저 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은 숫제 하늘의 엽관제 도라도 공인받 은 듯이 우리 국토에서 강탈한 전리품을 큰 배에 가득 싣고서 콧노래를 부르며 현해탄을 건너갔으리라! 그리고 전 국토를 공원화시키는데 우리의 자원과 인력으로 자기의 치부를 위해 사용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피상적으로 느끼는 일본에 대한 감정은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우리의 역사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남북문제까지 겹쳐있으니 더더욱 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은 이웃과도 같지만, 형제와도 같고, 남북 은 형제와도 갖지만, 부부와도 같은데, 형제나 부부싸움이라면 눈 한 번 지그시 감고 적당히 바 줄 수도 있을 텐데, 왜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켜 전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고, 300만 명이라는 미증유의 사상자와 이산가족을 발생하게끔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했어도 너무 심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까 남·북 간의 관계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며 같은 나라의 핏 줄이라고 하지만 한·일간의 관계는 무슨 안(un)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기에 국체가 다른 그들이 이 땅을 비참하게 억압했던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일반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하는 역사해석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일관계와 남북관계를 인격적으로 비교하는 찰나 나는 큰 영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 우리 조선의 지도자(왕과-방백들)들이 세계정신에 역행하는 큰 ‘죄罪’를 지은 것이로구나! 땅에서의 ‘인간의 죄’도 가벼이 여길 수 없지만, 무엇보다 역사의 큰 뜻인 ‘섭리의 죄’를 짓고 말았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신문명의 전주곡
신문명의&nbsp;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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