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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 '에바 페론' 남편 후안과 함께 '종신통치' 욕심의 끝은...?

부자공간 2023. 1. 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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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 '에바 페론' 남편 후안과 함께 '종신통치' 욕심의 끝은...?

대부분의 출세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어릴 때는 불행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르헨티나의 배우이자 정치인. 대통령 후안 페론의 두 번째 부인. 애칭인 '에비타'로도 유명하다. 1919년 출생 1952년 사망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인물이다. 

 

사생아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에바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후닌으로 옮겨서 가난한 생활을 하며 살아갔다.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살면서도 영화배우라는 꿈을 키웠던 에바는 193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겨가서 5년 만에 연예인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라디오 DJ를 한 적이 있는데, 목소리가 슬픈 듯하면서도 호소력 짙어서 꽤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목소리는 우아한 미모와 함께 그녀의 큰 무기가 된다. 그리고 1944년, 에바는 당시 산후안에서 일어난 대지진에 대한 이재민 구호 기금을 마련하고 있던 노동부 장관이던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당시 첫 부인을 잃고 독신으로 살아가던 후안 페론은 에바에게 한눈에 반하고 둘은 1945년에 정식으로 결혼하게 된다.

 

이후 에바는 대통령 선거에 참가한 남편을 돕기로 하는데 이 과정에서 민중들에게 그녀의 얼굴을 알리고 '에비타'라는 이름도 얻게 된다. 에비타의 대표곡은 "슬퍼말아요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이다. 에바가 영부인에 오르고 난 뒤 발코니에서 대중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대중들을 높이며 부르는 유명한 노래이다.

 

그런 그녀도 욕심을 부린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에바 페론의 개혁은 장점만큼이나 문제점들도 많이 있어서 완벽하게 성공한 개혁이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더군다나 "남편인 후안과 함께 종신통치를 하려는 낌새를 보인 것." 국민은 절대 속지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인간의 웃음 뒤에 숨겨진 거짓의 마음을 알고 하늘이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아주 신랄하게 비꼰 뮤지컬이 바로 에비타이다.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민중들에게 추앙받고 있던 에비타 신화의 불을 끄기 위해서 당시 방부처리 되어 있던 에바의 시신을 이탈리아로 몰래 빼돌린다. 이후 1971년에 후안 페론 측으로 송환된 그녀의 유해는 1975년 후안 페론의 세 번째 아내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이 된 이후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온다. 그녀의 시신은 사후 엄청난 수난을 당했는데 후안 페론이 실각한 직후 군부는 미라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귀 일부분과 손끝을 잘라 조사했었고 그 외에도 코가 깨지고 발이 훼손당했다. 그녀의 시체가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직후에 찍힌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보면 실로 안타까울 정도이다. 

 

https://youtu.be/Uf7namiNtn8

에비타 '에바 페론'
에비타 '에바 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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