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을 죽이려한 이재명의 의거가 성공했다면... 황현필 한국사
독립운동가 이재명... 이재명 (李在明, 1887년 ~ 1910년 9월 30일 )은 대한제국 시기의 독립운동가 이다. 불과 약관의 나이로 이완용 을 처단하려 했으나 실패 후 형장에서 순국했다. 아명 은 이수길 (李秀吉)이며, 개신교 인이다. 본관 은 진안 (鎭安)이다.
이재명은 매국노를 먼저 처단하는 것이 국권수호의 길이라 여기고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신을 죽이기로 계획하였다. 1909년 12월 22일, 종현천주교회당(鍾峴天主敎會堂, 현 명동성당)에서 같은 달 17일에 사망한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 추도식이 열렸다.
이 추도식에 이완용이 참석한다는 신문 기사를 본 이재명은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교회당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오전 11시 30분경 식장에서 나와 인력거를 타고 지나는 이완용을 보고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인력거꾼 박원문이 제지하자 칼로 제압한 뒤, 이완용의 허리를 찔렀다. 이완용이 인력거 아래로 떨어지자 어깨 등을 여러 차례 찌른 뒤, 이완용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거사 직후, 일본 순사의 칼에 왼쪽 넓적다리를 찔리는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에 대한 살인 미수 혐의로 곧 재판정에 섰으며, 공판에서 일본의 악행을 꾸짖고 이완용을 찌른 것이 의거였다며 스스로 변호했다. 다음은 일본을 꾸짖은 내용이다.
나는 흉행이 아니고 당당한 의행을 한 것이다. 이 일에 찬성한 사람은 2000만 민족이다. 왜법(倭法)이 불평하여 나의 생명을 빼앗기는 하나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죽어 수십만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으나 나의 충혼, 의혼(義魂)은 절대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한번 죽음은 슬프지 않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내 결코 죽어서 그 원한을 갚을 것이다. 1910년 5월 18일, 경성지법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된 뒤, 다음과 같은 최후 진술을 남겼다.
1910년 9월 30일, 경성감옥 현 서대문 형무소 형장에서 2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의거를 공모한 조창호, 이동수, 김정익 등 11명의 관련자들도 중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역사학자 황현필 유튜브 https://youtu.be/l2FRVtll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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