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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거짓말 닉슨... 김준혁 교수의 히히히 스토리

부자공간 2022. 9. 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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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터게이트' 거짓말 닉슨... 김준혁 교수의 히히히 스토리

1972년 6월 17일 토요일 쉬고 있는밥 우드워드(Bob Woodward) 기자는 편집장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고 지금 워터게이트에 이상한 사람 5명이 잡혀있는데 한번 가보아라. 초보 기자이지만 미국 내에서는 최고의 엘리트 과정을 거친 사람이다.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미국의 일간지 워싱톤 포스트 기자였다. 워트게이터는 워싱톤에 있는 최고급 호텔이었다. 그 호텔겸 오피스텔에 민주당전국위원회가 입주해있었다. 호텔의 1972년도에 방하나 임대료가 10만 달러였다. 미국의 공화당 지배층의  상징적인 호텔이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전국위원회에 도청을 하려는 사람들이 잡혔다. 이 사람들이 3주 전에 민주당전국위원회에 도청을 하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아서 다시 도청하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것을  워터게이트 호텔의 경비원은 괴한이 침입한 흔적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호텔에 출동한 경찰은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던 괴한 5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였다. 체포된 범인들은 끝까지 단순 절도임을 주장하였다. 체포된 그들이 1972년 당시 무선전화기, 만년필 체루가스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단순 절도범에 어울리지 않는 최고 거물급 변호사가 나타나서 이들을 변호하고 하는데...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기자가 본 그들이 지갑에 현금을 몇천 달러를 가지고 있어 이상하였다. 그런데 일당 중 1명이 가지고 있던 수첩에서 백악관 보좌관인 하워드 헌트의 전화번호가 발견되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헌트는 닉슨의 최측근이었다.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기자가 보기에는 1972년도에 미국의 사람들은 현금을 그렇게 가지고 다니지 않는데 현금을 몇천 달러 소지하고 무선 전화기도 일반인은 가질 수 없는 시대에 소지하고 있었고 최고의 변호사가 오고 그중 한 명 맥커드는 CIA 출신으로 공화당 전당대회 보안책임자이었다.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기자가 편집장에게 보고를 하게 된다. 벤저민 크라운실드 브래들리(Benjamin Crowninshield Bradlee)는 편집장은 이 사건의 중요성을 알고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 두기자를 파견한다. 이 사건으로 워싱톤 포스트지는 닉슨 정부로부터 세금조사, CIA FBI 등 온갖 압력을 받게 된다. 그것을 당당하게 맞서서 취재하게 한 사람이 브래들리 편집장이다.

 

편집장이 번스타인을 합류하게 하였는데 번스타인은 고등학교 졸업을 한 사람이지만 실무능력이 뛰어난고 집요한 사람이다. 그는 19세에 사무보조원으로 입사하여 기자가 된 사람이다. 밥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이 취재를 하는 과정에 헌트(백악관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했더니 본인은 맥커드를 모른다고 했다는 것이다. 일주일 후 뜻밖에 닉슨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나는 이 특별한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른다." 이 회견을 들은 두 기자들이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 5명에게 8만 9천 달러돈이 맥커드라는 사람에게 있었다. 맥시코에서 돈세탁을 해서 온 공화당의 선거자금 중 일부였다. 이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 존 미첼이라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 닉슨의 선대위원장이 되어서 그는 "우리는 이 사건에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이렇게 발표 후 그가 갑자기 건강을 위해 사임을 권유하여 사임을 하게 된다.

 

검찰이 기소 후 판사가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 직전까지 이 사건을 일체 비공개로 했다. 재판관이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 대통령 선거는 치러진 것이다. 닉슨이 당선된 것이다. 닉슨은 백악관에서 은밀한 회의를 하면서 "이 사건을 FBI가 조사를 못하게 CIA가 막아라." 요즈음으로 치면 검찰과 경찰이 조사하지 못하게 국정원이 막 아라와 같다는 것이다. CIA가 5명을 은밀히 접촉하여 돈으로 매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CIA가 돈 없다고 말해면서 닉슨 측에 요구하는데 이건으로 FBI의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사건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윌리엄 마크 펠트(William Mark Felt)였다. 결국은 FBI가 CIA와 불협화음에서 나온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유튜브 https://youtu.be/vh4csK-13a8 링크를 해서 보시면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쉽게 이해 될 것이다.

김준혁 교수 히히스토리

 

미국의 일간지 워싱톤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이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파헤쳐 진실이 밝혀지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들에게 중요한 단서를 계속 제공한 정보원이 있었는데 밥 우드워드는 이 사람을 '깊은 목구멍(Deep Throat)' 이라고 칭했다. 깊은 목구멍의 정체는 그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다가 2005년에야 밝혀지는데, 그 정체는 바로 사건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윌리엄 마크 펠트(William Mark Felt, 1913 ~ 2008)였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이 워터게이트 사건 폭로의 공로로 무명의 신참 기자에서 일약 전 미국인이 아는 대기자가 되었다. 이 2명은 1971년 워터게이트 건물 침입 사건부터 1974년 닉슨 사임까지 무려 3년 동안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렸고 결국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내었다.

 

이런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한 장기간의 심층 취재와 보도는 매일 마감시간에 쫓기면서 속보 경쟁만 하고 있던 미국 신문, 방송에 일대 경종을 울리면서 탐사보도 저널리즘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여기엔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펠트 이외에도 당시 워싱톤 포스트 편집국장이었던 벤저민 크라운실드 브래들리(Benjamin Crowninshield Bradlee, 1921 ~ 2014)와 사주였던 캐서린 마이어 그레이엄(Katharine Meyer Graham, 1917 ~ 2001)도 큰 역할을 했다. 브래들리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사건 기사를 냉철하게 편집해 실어 사건의 전개 과정을 조율해냈으며 그레이엄은 워싱턴 포스트의 붕괴를 각오하고 두 기자를 보호하며 외풍에 맞섰다.

 

더군다나 이전에 워싱턴 포스트는 닉슨의 가족들을 취재하면서 무단침입(...)을 통해 사진을 찍어가기도 해서 닉슨에게 반감을 사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담은 펜타곤 보고서를 뉴욕 타임즈와 함께 보도하여 닉슨이 워싱턴 포스트 기자는 백악관에 절대 들이지 말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닉슨 행정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실제로 닉슨 행정부에서는 워싱턴 포스트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 조사는 물론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해왔던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30년 동안이나 정보제공자를 보호한 워싱턴 포스트는 언론사의 귀감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그리고 이 사건의 교훈은 내부 고발자의 중요성도 다시 느끼게 해준다는 것. 또한 이 사건으로 일개 지방 언론사에 불과했던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주류 언론이 되었다. 당시 워싱톤 포스트 편집장 벤저민 크라운실드 브래들리(Benjamin Crowninshield Bradlee)는 훗날 미국역사에서 가장 남는 언론인이 된다. ■

닉슨 워터게이트

 

시간이 되시면 '김준혁 교수의 히히히 스토리' 유튜브 들어보면 이 사건을 쉽게 이해가 된다.

https://youtu.be/vh4csK-13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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