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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가 증명한 사실 작가를 말하다.

부자공간 2022. 6. 1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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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의 한계? '우리들의 블루스'가 증명한 사실?

'우리들의 블루스' 드라마에 빠지다. 누가 '노희경의 한계'라고 하는가? 물론 전문가들은 평가를 할 수 있지만 시청자는 작가가 이끄는 대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노희경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의 리얼리즘이 퇴색됐다는 비판을 제기했고, 그의 세계관이 낡았다는 말도 나왔다. 노 작가가 노(老) 작가가 되었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노희경 작가의 한계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도 많은 이들이라는 표현은 누가 어떻게 비판을 하는지? 리얼리즘이 퇴색됐다는 비판은 시청자가 보기에 어느 드라마보다 현실의 실제성이 드라마에 그대로 담아서 감동을 준 것 아닌가? 작가의 드라마가 선정적이거나 뭔가 사회에 영향을 주는 드라마라면 비평을 해도 당연하지만 사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 자체가 우리들의 블루스이다. 좀 더 관대하고 크게보면 어느 드라마보다 시청자에게 감동을 준 것으로 생각되는데...?

 

'옥동은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한 사발 끓여두고 잠들었다' 동석의 울음에 시청자도 울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마음은 옥동을 좀 더 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국민들이 바라는 사람 냄새나는 사회를 보여준 드라마이다. 작가의 세심함이 보여준 안타까운 사연은 한라산 입산금지 장면도 작가의 깊은 내면이 보였다.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는 내내 행복과 감동으로 오가는 사청자의 마음이었다. 굳이 전문가의 평가가 아니라면 시청자는 그냥 드라마 자체가 사람 사는 사회로 깊이 빠져드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꼬집고, 담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내던 날카롭던 펜이 조금은 무뎌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내용도 시청자는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블루스' 드라마는 크게 사회문제가 대두될 만한 그런 드라마가 아닌데...? 이런 생각이들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단순 시청자는 어느 드라마보다 그 자체가 우리들의 블루스 이다. 노희경 작가와 아무상관은 없지만 이런 비평은 시청자로서 동의가 어려워서 마음을 표현해본다.

     

뉴스에 ▶ 옥동은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한 사발 끓여두고 잠들었다. 동석은 영원히 잠든 옥동의 팔에 누웠다가, 다시 자신의 팔에 눕혔다가 끌어안고 아이처럼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엄마를 평생 미워한 게 아니라 화해하고 싶었다는 걸, 사실은 끌어안고 실컷 울고 싶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여전히 '어린' 동석은 비로소 어른이 됐다.  마음을 울린 이야기 많은 이들이 노희경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의 리얼리즘이 퇴색됐다는 비판을 제기했고, 그의 세계관이 낡았다는 말도 나왔다. 노 작가가 노(老) 작가가 되었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물론 드라마 군데군데 시대적 변화에 뒤떨어지는 부분이 발견됐고 아쉬움도 남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꼬집고, 담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내던 날카롭던 펜이 조금은 무뎌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노희경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글에는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위로가 담겨 있다. 깊은 울림이 있다. tvN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것을 증명했다. 출생의 비밀도, 음모와 암투도, 막장적인 요소도 없는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 14.59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한 건 놀라운 일이다. 그의 바람처럼, 모두 행복한 세상이 올까. 요원한 꿈일지 모르겠다. 삶은 고해라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 땅에 괴롭기 위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내 삶에서 불행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마다 '행복'을 노래했던 <우리들의 블루스>를 떠올려 보기로 하자.■ 

 

우리들의 블루스 동석과 옥동
우리들의 블루스 동석과 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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