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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범죄자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 역대 가장 로맨틱한 '강도' 2

부자공간 2022. 12. 2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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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범죄자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 역대 가장 로맨틱한 '강도' 2

보니와 클라이드의 이야기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장 로맨틱한 강도 이야기 중 하나가 되었다. 1930년 대공황 때 절도, 살인, 납치 등을 저지른 이 범죄자 커플은 그들을 둘러싼 동화 같은 로맨스 말고는 특별한 이유 없이 대중들에게 용서를 받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며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말고, 진짜 보니와 클라이드는 누구였을까? 출처: (Listverse) (Factinate) (Ranker)

 

납치와 차량 납치 : 그들이 좋아한 다른 활동으로는 납치와 자동차 납치가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도망쳐야 했고 종종 차를 충돌시켰기 때문에 자동차 납치는 필수적이었다. 납치는 때때로 자동차 납치와 함께 이루어졌고,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나기 위해 인질을 잡아야 했다.

 

자비로운 납치범들 : 그들은 인질들을 잘 대해주었고, 그들을 석방할 때 위로금을 주기도 했다. 그들은 폭력적인 범죄로 악명이 높았지만, 보통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원했다.

 

범죄를 계속하다 : 보니와 클라이드가 범죄의 삶을 뒤로하고 떠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1930년대 초 감옥에서 풀려난 후, 클라이드는 정직한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텍사스 유리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경찰에 의한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고, 부부는 만약 그들이 법에 의해 괴롭힘을 당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1967년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한 장면)

 

뮤지션 클라이드 : 클라이드는 평생 색소폰과 기타 연주를 좋아하는 열렬한 뮤지션이었다. 클라이드의 여동생 릴리언에 따르면, 클라이드는 어렸을 때 이웃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색소폰은 평생 그와 함께 있었고, 그와 보니가 살해된 것으로 유명한 차 안에서 발견되었다.

 

클라이드의 기타 : 클라이드의 두 번째 소중한 소유물인 기타는 불행하게도 그와 여정 전체를 함께하지 못했다. 1933년 미주리 주 조플린 은신처가 매복된 후, 배로우 갱은 거의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나야 했다. 클라이드의 귀중한 기타는 버려진 소유물 중 하나였다.

 

보니의 카메라 : 또한 조플린에 남겨진 물건들 중에는 보니의 카메라와 필름들도 있었다. 이 사진들은 빠르게 언론에 유포되어 이들에 대한 대중의 친밀감을 더해주었다. 그들의 은신처에서 보니의 시집도 발견되었다.

 

시인 보니 : 보니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텍사스 카우프만 카운티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많은 시들은 자전적이었고, 그녀의 삶의 사랑과 함께 했던 모험들을 자세히 묘사했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이야기 : 일반적으로 'The Story of Bonnie and Clyde'로 더 잘 알려진 'The Trail's End'라는 제목의 보니가 쓴 시는 1933년경에 쓰여졌고, 그들의 삶의 대부분을 기록하고, 심지어 미래를 꿈꿨다. 시의 마지막 구절에는 보니가 그들의 임박한 죽음을 묘사했는데, 그 시는 1년 후에 일어날 비극을 예견했다.

 

보니의 상징적인 담배는 사실이 아니다 : 보니의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는 갱단의 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권총을 손에 들고, 담배를 입에 문 사진이다. 이 사진은 보니가 종종 "총을 쏘고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실제로 보니는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았다. 사진은 여배우 페이 더너웨이가 1967년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홍보 사진으로 상징적인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추격대 : 1934년까지 보니와 클라이드와 그들의 갱단은 9명의 국회의원과 4명의 민간인을 포함하여 최소 13명을 사살했다. 보니의 잃어버린 카메라의 사진들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후, 연방 정부는 마침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개입했다. 악명 높은 텍사스 레인저 프랭크 해머가 이끄는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추격대가 갱단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하다 : 연방수사국과 추격대가 갱단에 접근함에 따라, 탈주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전국의 모텔과 상점, 식당들은 삼엄한 경계 태세에 들어갔고, 갱단은 숲 속에 숨어 캠프파이어를 하며 생존을 이어갔다. 그들은 남은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코 이별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유명한 차 : 보니와 클라이드가 1934년에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몰고간 유명한 차는 그 당시에 정말 멋진 차였다. 그 차는 1934년에 새로 나온 포드 모델 40B 디럭스 세단이었다.

 

보니와 클라이드 매복 사건 : 1934년 5월까지 프랑크 해머의 추격대는 보니와 클라이드의 뒤를 바짝 쫓았고, 그들은 나머지 패거리들에 의해 버려졌다. 두 사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받은 후, 해머와 추격대는 루이지애나 주 154번 고속도로를 따라 늘어선 덤불에서 매복 공격을 시작했다.

 

어머니를 향한 비난 : 불행하게도, 대혼란은 보니와 클라이드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경찰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고 12명이 넘는 두 사람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재판에 회부했다. 그들은 심지어 클라이드의 어머니인 쿠미 바로(왼쪽)가 3년 동안 범죄를 주도했다고 비난했다. 이 이론은 타당하지 않았지만, 쿠미는 결국 한 달 동안 감옥에서 복역하게 되었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유산 :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우는 미국 전역을 매료시켰다. 가난과 빈곤이 만연한 시대에 갱단은 점점 더 흔해졌지만, 보니와 클라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낭만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죽은 지 거의 1세기가 지난 오늘날, 보니와 클라이드는 함께 있는 한 세상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여겨지고 있다. (1967년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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