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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범죄자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 역대 가장 로맨틱한 '강도' 1

부자공간 2022. 12. 2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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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범죄자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 역대 가장 로맨틱한 '강도' 1

보니와 클라이드의 이야기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장 로맨틱한 강도 이야기 중 하나가 되었다. 1930년 대공황 때 절도, 살인, 납치 등을 저지른 이 범죄자 커플은 그들을 둘러싼 동화 같은 로맨스 말고는 특별한 이유 없이 대중들에게 용서를 받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며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말고, 진짜 보니와 클라이드는 누구였을까? 출처: (Listverse) (Factinate) (Ranker)

 

보니와 클라이드는 누구인가? : 보니와 클라이드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대담한 범죄자 커플이었고, 대공황이 절정에 달했던 1931년과 1934년 사이에 미국 남부, 서부, 중서부에서 3년 동안 대혼란을 일으켰다.

 

보니 파커 : 1910년 텍사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보니 파커는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노동자로서의 삶에 큰 불만을 품었다. 보니가 겨우 4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는 로웨나의 작은 마을에서 댈러스 교외로 이주했다.

 

어린 신부 보니 : 댈러스에서 보니는 계속해서 교육을 받았고 15살 때 로이 손튼이라는 매력적인 소년을 만났다. 두 사람은 그녀의 16번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결혼했다. 불행하게도, 손튼의 끊임없는 범죄와 그의 부재는 그들의 결혼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클라이드 배로우 : 클라이드 배로우는 1909년 텍사스 시골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는데, 가난한 가정의 일곱 아이들 중 다섯 번째 아이였다. 그의 가족은 1920년대에 웨스트 댈러스로 이사했고, 배로우와 그의 형제들은 그곳에서 작은 범죄에 빠르게 연루되었다.

 

선원 클라이드 : 클라이드의 삶은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1926년 클라이드가 17살이었을 때, 미국 해군에 입대하려고 했지만 어린 시절의 병으로 인한 의학적인 이유로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클라이드의 남은 인생을 무겁게 짓눌렀다고 믿고 있다.

 

청춘의 사랑 : 보니와 클라이드의 첫 만남에 대해 잘 알려진 것은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1930년에 친구를 통해 만났고 즉시 서로에게 빠져들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미 범죄의 삶에 익숙해진 클라이드와 실직하고 잃을 것이 없는 댈러스에 지친 보니는 사랑과 범죄에서 뗄 수 없는 파트너가 되었다.

 

혼외 범죄자 : 1929년에 그녀의 남편과 관계를 끊고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니는 법적으로 로이 손튼과 이혼하지 않았었다. 사실, 그녀는 죽는 날까지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보니와 클라이드는 법적으로 결혼한 적이 없다.

 

작지만 위험한 존재 : 그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 커플은 실제로 꽤 아담했다. 보니 파커의 키는 150cm였고 클라이드는 162cm에 불과했다.

 

탈옥범 :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보니와 클라이드는 감옥에 꽤 친숙했다. 특히 클라이드는 끊임없이 감옥을 들락거렸지만, 보니는 거의 항상 그를 도와주었다. 클라이드가 21살이었을 때, 그는 보니가 밀수한 무기의 도움으로 텍사스 감옥을 탈출했지만, 감옥에 있는 동안 그를 반복적으로 폭행했던 다른 죄수의 두개골을 부수고 죽인 후 탈출할 수 있었다.

 

발가락을 자르다 : 2년 후, 감옥에서 또 다른 기간 동안 클라이드는 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선고받았는데, 그는 이 노동을 원하지 않았다. 농장을 피하기 위해, 클라이드는 자신의 발가락 두 개를 잘라냈고, 남은 인생 동안 절뚝거리며 걷게 되었다. 발가락이 있든 없든, 클라이드의 어머니가 성공적으로 그의 석방을 청원한 후 불과 6일 후에 석방되었다.

 

다리를 절다 : 클라이드만 절뚝거리는 문제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1933년 치명적인 자동차 충돌 후, 보니 또한 심하게 다리를 다쳐서 때때로 클라이드가 걷는 것을 도와주어야 했다. 그녀는 한 발로 깡충깡충 뛰어야 했다.

 

배로우 갱 : 보니와 클라이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들은 배로우 갱으로 알려진 어떤 회사를 가지고 있었다. 클라이드의 남동생 벅 배로우, 그의 아내 블랑쉬, W.D. 존스, 헨리 메트빈, 레이먼드 해밀턴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1967년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한 장면)

 

안전한 곳은 없다 : 배로우 갱은 은행 강도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은행이 그들의 첫 번째 목표는 아니었다. 그들은 식료품점, 양로원, 주유소, 무기고를 노렸고, 많은 무기를 비축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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