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을 말하면 그것은 불가능이다.
현재의 이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미래에 존재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끝없이 거부한다. 그래서 혼란과 갈등에 빠진다는 것이다. 왜 "그대는 자기 자신을 그 자체로 인정하지 못하는가?" 존재계 전체가 그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그대만은 그렇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루어야 할 어떤 이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은 언제나 미래에 존재한다. 이상은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미래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 때문에 그대는 미래 속에서 살지만 그것은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 때문에 그대는 "지금 여기"에서 삶을 살지 못한다. 모든 이상과 이념은 비난하는 마음을 심어놓는다. 이상과 이념을 가질 때 하나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왜 끊임없이 마음속에 이상을 가지는가? 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축제의 삶을 살라. 기쁨의 불꽃이 돼라." 그러면 모든 나쁜 것이 사라진다. 분노, 욕망 또는 그대가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든 그것들은 실체가 아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기쁨의 부재, 환희에 찬 삶의 부재일 뿐이다. 삶을 즐기면 화가 나지 않는다. 삶을 즐길 수 없기 때문에 그대는 화를 낸다. 누군가 화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삶을 즐길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불행 속에서 살고 그래서 걸핏하면 화를 내게 된다. 축제의 마음을 만들지 못하니 사랑이 그대에게 일어날 수없다. 무엇이 부족한가? 무엇이 모자라는가? 그대는 살아있고, 숨 쉬고 있고, 의식을 갖고 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비로 이 순간 신처럼 돼라. 실제로 그대는 신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대가 신으로서 존재하기 시작하면 모든 고통, 혼란, 어둠이 사라진다. 빛이 돼라 그렇게 되는 데는 어떤 조건도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싫어한 나머지 그것을 떨쳐 버리기로 결심했다. 오쇼의 글이다.
만일 그가 단순히 그늘 속으로만 걸어 들어갔어도 그 외 그림자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도 그의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싸울 필요가 없다. 달아날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그늘 속으로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다. 어떤 것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어떤 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지 말라. 과학은 의심에 기초하고 있지만 종교는 쉬라다. 즉 신뢰에 바탕을 둔다. 깊은 신뢰 속에 단순히 앉아 있으라. 내면의 본질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 본질은 언제나 그곳에 존재한다. 언제나 마음과 싸우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결국 지고 만다. 마음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논쟁적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대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살아있고, 숨쉬고 있고, 의식을 갖고있는 그 자체가 감사한 마음의 기본으로 환희에 찬 삶의 기본이다. 깊은 신뢰 속에는 "만일"은 없다. "만일"을 말하면 그것은 불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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