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아이들 죽어가는데... 피난 간 사람들... '돈'이 바닥나서 귀향
전쟁의 공포는 상상만 하거나 영화에서 본 우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실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거나 유치원을 가는 길이 마지막의 길이 되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갔지만 돈이 떨어져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어떤 어린이는 "11살 막심과 안드리는 매일 집 근처 근문소를 지킵니다. 장난감 총을 들고 지나가는 군인들에게 경례를 올립니다. 전쟁이 이렇게 계속된다면 조국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검문소에 나올 생각입니다." 이런 내용이 전쟁 속의 어린이의 생각이다. 아이들이 희생되는 전쟁이 과연 옳은가...? 피난 갔다가 한 달 만에 포크로프스크로 귀향한 한 젊은 여성은 "누가 우리를 돌보아주기나 하냐"고 반문했다. 18세 나이로 이 여성은 웨이트리스 일로 집안에 돈을 벌어오는 거의 유일한 식구이다. 시에서 떨어진 외곽 지역에 살고 있는 82세의 노모는 아들과 함께 피난 가라는 당국의 독려에 집을 떠나 위쪽 드니프로시에 갔다가 닷새 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죽더라도 집에서 죽는 편이 나을 정도로 피난 생활이 좋지 않았다. 임시 수용소에서 노모는 양로원으로 가도록 조치되었고 중풍에 왼쪽 몸을 못쓰는 아들은 장애자를 위한 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런 가족 생이별을 견딜 수 없어 두 사람은 서둘러 다시 집에 왓는데 아들의 휠체어가 버스에 안 들어가는 바람에 놔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습한 축축한 방에 두 사람은 살고 있다. 그래도 이곳이 낫다. 방공 사이렌이 울리면 이웃들과 함께 지하 대피실로 가고 한 달에 한 번 인도주의 구호품이 배급된다. 노모는 배급품이 썩 훌륭하다고 말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이웃들이 깨진 창을 플라스틱 필름으로 막아줄 것이고 난로의 숯검정도 청소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난방용 가스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노모는 "소련 시절이 이보다 살기가 훨씬 나았다"면서 국가 지원을 아쉬워했다. 전쟁은 이렇게 슬픔을 만들어 내는데 미래의 누구를 위하여 저쟁을 하는지...? 사람들은 죽어가는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타향 생활의 불확실성에 못 견뎌 귀향하는 경우도 많다. 날마다 이곳보다 안전한 서쪽으로 피난가는 열차가 출발하고 또 마찬가지로 다른 기차로 날마다 고향에 다시 오기로 한 주민들이 돌아온다. 피난 열차는 무료지만 귀향 열차는 아니다. 피난지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돌아오는 경우가 그중 많다. 한 여성은 두 달 넘게 드니프로에 있다가 결국 고향으로 와서 옛 광부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피난민으로 북적이는 드니프로시 물가는 아주 비쌌다. "친척집에 머물러 싼 방값을 냈다. 한 칸 방이 한 달 6000흐리브니아(200달러, 23만원)이나 한다"는 것이다. 돈이 부족해 타향에 정착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이곳 역전의 택시 운전사가 말했다. 피난 갔다 돌아온 한 여성은 전선에 가까운 외진 마을의 옛집에 가보니 집은 없어지고 포탄 구멍만 발견했다. "여자는 울었지만 결국 머물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운전사는 사정을 전했다.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 러시아군의 로켓포 공격으로 뼈대만 남은 버스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던 13살 남자아이가 숨진채 누워있다. 핏기를 잃은 아이의 손을 꼭 잡은 라버지는 넋이 나간 숨진 소년의 15살 누나도 파편을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4살 리사 드미트리에바의 장례식 관위에는 평소 리사가 좋아하던 장난감과 인형들이 놓였습니다. 리사는 지난 14일 러시아 잠수함에서 발사된 순항미사일 공격으로 숨졌다, 또 다른 어린이 2명 등 25명이 함께 희생되었다. "리사와 빈니차 주민들을 살해한 자들. 우크라이나 인들을 살해한 자들은 악마를 섬기고 있습니다" 유엔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어린이 300명을 포함해 민간인 5천여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한다. 러사아가 돈바스 넘어 지역까지 무차별 공격을 공언하는 가운데 수많은 어린이들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피난 갔던 우크라인 다시 돌아와…'돈'이 바닥나서 할 수 없이 귀향 ▶ 러시아 침략의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집을 떠나 국외나 국내 다른 곳으로 피난 갔던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전세가 우크라에 4월부터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 지방을 정말 점령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투입되자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의 우크라 당국은 두 주의 60% 우크라 통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모두 피난 갈 것을 적극 권유했고 이에 수십 만 명이 국내외로 떠났다. 루한스크주의 98%가 러시아군과 친러시아 세력 수중에 들어가고 도네츠크주도 50% 이상이 점령당한 가운데 피난 갔던 사람 중 수 만 명이 전선에 가까운 농촌 및 도시 지역으로 귀환했다. 고향도 위험하지만 이곳보다 안전한 곳에 살 형편이 못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피난지 생활이 아주 불편한 데다 돈 많이 들어간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이렇게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가 러시아군 포탄에 사망한 젊은 여성들이 돈바스 지역에서 상당수에 달한 가운데 25일 도네츠크주 포크로프스크시에서 며칠 전 집 뒤뜰에서 이렇게 세상을 뜬 35세 여성의 장례식이 열렸다. 고인은 두 달 동안 다른 곳에 피난 갔다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다시 고향에 왔었다.
매장식에 나온 한 친구는 "우리들은 이길 수 없다. 다른 곳에서는 우리를 고용해주지 않았고 그런 속에서 집세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세상에 갈 곳이라곤 어디에도 없고 단지 이 도네츠크 지역만이 "모든 것이 우리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크로프스크 시 당국은 피난 갔던 시민 중 70%가 다시 집에 돌아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도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고 북부 관문으로 싸움이 치열한 크라마토르스크의 경우는 전쟁 전 22만 명 시 인구가 5만 명까지 줄었다가 지금은 6만 8000명으로 늘어났다. 러시아군의 공격에 맞서고 있는 주의 우크라 당국은 전쟁 상황에서도 주민들이 피난 가지 않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피난 갔던 도네츠크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마음의 상처가 크다. 도네츠크주 주민이라면 러시아어 상용자로 알고 다른 주 사람들이 경계하고 선 듯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피난 중에 돈이 부족해 큰 문제였다. 피난 가지 못한 도네츠크 주민 중에는 피난 갈 돈이 없어 남은 사람이 상당수다. 2014년 분리세력과 정부군 간 무력충돌 때부터 인구 수도 많고 산업 시설 핵심지였던 도네츠크주 경제는 밑바닥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 아래 러시아군 병사들이 하는 짓에 그때보다 더 불행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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