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정치. 사회. 정보. 문화. 철학. 연예. 여행. 영혼여행)

일본인 "독립운동가를 변론"한 '후세 다쓰지다' 독립운동가 선정

부자공간 2023. 3. 15. 17:32
반응형

일본인 "독립운동가를 변론"한 '후세 다쓰지다' 독립운동가 선정

일왕을 암살하려다 체포돼 옥중 순국한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독립운동가를 변론한 '후세 다쓰지다' 독립운동가 5월 독립운동가 선정

 

조선 문제는 결코 조선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조선 문제는 동양의 발칸 문제이다. 조선은 세계 평화와 혼란을 좌우하는 열쇠이다. 전 세계의 문제이자 전 인류의 문제다.

 

1880년 11월 13일 일본제국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보면서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가졌다. 동시에 묵자의 겸애사상과 레프 톨스토이의 사상을 접하며 이에 많은 감명을 받고 사람들을 돕고 헌신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후 정교회 신학교까지 들어갔으나 3개월 만에 자퇴하였고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우쓰노미야 지검 검사로 부임했다. 하지만 검사로 활동하던 중, 생활고로 동반 자살을 시도하다 아들만 죽고 어머니는 살아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녀를 살인미수로 기소하는 법률의 미비점과 적용에 대한 문제점에 회의를 느끼고 검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가 되었다.

 

1911년에 그는 「조선의 독립 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병합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한국의 독립 운동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이 글을 쓴 것 때문에 일본제국 경찰에게 조사 받는다. 이후 그는 주로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았다. 

 

1919년에는 2.8독립 선언의 주체였던 최필용, 송계백 등을 변호하여 내란 죄 혐의에 대한 무죄를 주장하였으며 1923년에 밀정의 실존 인물 김시현과 황옥의 변호, 1924년에는 도쿄 궁성에 폭탄을 던진 의열 단원인 김지섭의 변호를 맡았다.

 

한편 1923년에 발생했던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 해당 사건이 일본 정부와 일본제국 경찰, 군부에 의해 조작된 유언비어로 인한 사건임을 강력하게 비판하였고, 조선일보에 이를 사죄하는 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변호 행적 중 가장 유명한 예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변호이다. 두 사람은 천황을 폭살할 계획을 세우다가 검거되어서 천황 폭살을 기획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 재판은 박열 대역 사건으로 불리며 일본 전역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후세 다쓰지는 두 사람의 무죄를 주장하며 변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옥중 결혼 수속을 대신 해 주었다. 또한 후미코가 의문사하자 그녀의 유골을 수습해 박열의 고향인 경상북도 문경에 안장해 줄 정도로 노력하였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변호사 자격을 회복한 뒤엔, 한신 교육 투쟁 사건이나 도쿄 조선 고등학교 사건 등, 재일 한국인 사건및 노동 운동에 대한 변호를 맡았다. 그 후 6,25 전쟁까지 목격한 그는 정전 협정이 체결된 직후인 1953년 9월 13일,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