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백제의 500년 도성 및 궁궐 "한성 백제"를 말하다.
백제 700년 중에 500년은 어디인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사이에 지어진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토성(土城). 정식 명칭은 서울 풍납동 토성이며, 사적 제11호이다. 예전의 이름은 광주 풍납리 토성(廣州風納里土城)인데, 2011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한성백제의 도성이었던 위례성이라는 의견과 단순한 방어성이라는 의견이 서로 엇갈리면서 중요성과 보호에 머뭇거리는 점이 있었다. 현재는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이라는 것이 정설. 발굴조사 성과를 보면 단순 방어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머어마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위치는 몽촌토성의 북쪽에 있다.
올림픽대교와 천호대교 사이에 타원형으로 위치해 있으며, 전체 넓이는 35만 3589.1 ㎡이다. 풍납토성 때문에 올림픽대교와 천호대교가 조금 휘어져 있다.
한강변에 인접한 서쪽 성벽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되었으며 최근 2017년 조사에서 성벽 흔적과 문이 있었던 자리가 확인되었다. 서벽이 유실되면서 중국제 초두(鐎斗)를 비롯한 백제 유물이 확인되어 풍납토성의 존재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1997년 처음 풍납토성에 대한 긴급발굴이 이루어진 후로 약 20년이 지나는 동안 풍납토성은 전체의 절반도 발굴하지 못했다. 이미 성 내부에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 왕성임에도 불구하고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이유와 왜 발굴조사가 더디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단들에 나와있다.
현재 절반도 채 발굴하지 못했지만 발굴조사보고서는 무려 18권까지 나왔다. 물론 소규모로 조금씩 발굴하다 보니 보고서의 권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점도 있지만 보고서 하나하나가 한성백제의 물질문화 연구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즉, 한성백제를 이야기하면서 풍납토성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
발굴 내용을 모두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풍납토성의 중심부에 해당하고 중요한 자료들이 많이 나온 경당지구 위주로 간단히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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