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상 최악의 여성 4인", 민비 빼고... 황현필의 한국사
민비를 빼고... 천추태후. 기황후. 장녹수. 김개시 등을 여성 4인을 "우리 역사 상 최악의 여성"으로 꼽았다.
천추태후는 고려 왕조의 창업 군주 태조 왕건의 손녀, 고려 제5대 국왕인 경종의 제3비 그리고 제6대 국왕인 성종의 여동생, 제7대 국왕인 목종의 모후이다. 생전 아들 목종에게 받은 공식 존호는 '응천계성정덕왕태후(應天啓聖靜德王太后)'. 그러나 비공식 존호로 관저였던 천추전(千秋殿)에 거처했다고 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천추태후(天秋太后)'라 불렸다.
기황후는 1340년 2월 혜종은 메르키트 바얀을 축출하려 했고, 혜종의 의도를 알아챈 메르키트 바얀의 친조카 토크토아가 혜종을 찾아가 바얀 제거에 참여할 것을 약속한다. 토크토아는 바얀을 탄핵, 사라판과 다른 신하들의 잇단 탄핵으로 실각, 광동선으로 유배가던 길에 사망한다. 1340년 2월 메르키트 바얀(伯顔) 세력이 숙청된 뒤 4월 드디어 제2황후로 책봉되었다. 그녀가 제2황후로 되면서 친정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부에게 왕(王)의 작위가 추증된다. 아버지 기자오(奇子敖)는 처음에 영안왕(榮安王)으로 봉하고 후에 추봉하여 경왕(敬王)이고, 할아버지 기관(奇琯), 증조부 기홍영(奇洪潁) 시호는 미상이다.
장녹수는 숙용 장씨(淑容 張氏, 1490년경 ~ 1506년)는 조선 연산군늬 후궁으로, 본명은 장녹수(張綠水)이다. 자녀로는 연산군과의 사이에 딸 영수(寧壽)가 있다. 연산군은 이를 듣고 녹수를 입궐시켜 숙원(淑媛)에 봉하고 많은 재물을 집으로 보내주고 노비와 전답, 가옥을 내렸다. 장녹수는 연산군을 젖먹이 다루듯 하였지만, 연산군은 그녀를 무척 총애하여 모든 상벌이 장녹수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다. 1503년 연산군은 장녹수를 숙용에 봉했다.
김개시는 개시의 시(屎)가 ‘똥 시’ 자이기 때문에 실제 이름은 김개똥이었을 것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 계축일기에서는 ‘가히’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또 연려실기술과 공사견문록 등에는 그녀의 이름이 각각 ‘개희(介姬)’, ‘가히(可屎)’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김상궁은 이름이 개시(介屎)로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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