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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가장 잔인했던 그의 오른팔은 누구였나? 1

부자공간 2023. 2. 16.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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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가장 잔인했던 그의  오른팔은 누구였나? 1

기록된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돌프 히틀러만이 아니다. 나치 독재자는 믿을 만한 부하들로 구성된 범죄 집단을 지휘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유대인이었으며, 홀로코스트로 알려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살해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 제3제국이 무너지면서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전쟁 범죄에 책임이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이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았고 그 후 처형되었다. 그러나 몇몇은 정의를 피해 자유인으로서 삶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잔인했던 히틀러의 오른팔들은 누구였을까? 출처: (History) (BBC) (HistoryNet) (Britannica)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는 1933년에 독일의 수상이 되면서 나치당의 지도자로서 권력을 얻었다. 그의 지도력과 강한 이념 아래, 나치당은 제3제국 전역에 테러, 파괴, 그리고 잔혹한 공포를 가했다. 수많은 잔학 행위가 총통에게 충성하는 그의 오른팔들의 명령 아래 행해졌다. 삶과 죽음에 대한 전례 없는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들, 그들은 누구였을까?

 

하인리히 힘믈러 하인리히 힘믈러는 나치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히틀러에 의해 국가지도자로 임명된 그는 강제 수용소를 설치하고 통제하는 책임이 있었고, 홀로코스트의 주요 설계자였다.

 

루돌프 헤스 부총통 루돌프 헤스는 1923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편집했으며, 나중에 그의 개인 비서가 되었다. 헤스는 1935년 악명 높은 뉘른베르크 법을 포함한 정부의 많은 법안에 서명한 책임이 있다. 이 법은 독일에서 효과적으로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1941년, 헤스는 연합국과 평화 협정을 협상하기 위해 남몰래 스코틀랜드로 날아가 나치 정권을 놀라게 했다.

 

헤르만 괴링 훈장을 받은 제1차 세계대전 조종사 헤르만 괴링은 나치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1934년 힘믈러에게 양도한 게슈타포 창설을 감독한 후, 괴링은 루프트바페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괴링은 히틀러가 인정한 후계자였고, 보안 경찰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유대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조직하고 조정하라고 명령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요제프 괴벨스 제3제국의 선전부 장관으로서, 요제프 괴벨스는 엄청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했다. 연설의 대가인 괴벨스는 그의 강령을 사용하여 반유대주의를 방송했고, 후에 유대인들의 박멸을 옹호했다.

 

마르틴 보어만 루돌프 헤스의 영국행 이후 히틀러의 개인 비서직을 맡은 마르틴 보어만은 당수직도 맡았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경계하는 힘믈러, 괴링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음모, 조작, 정치적인 싸움의 달인임을 증명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에게 유대인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한 사람은 보어만이었다.

 

아돌프 아이히만 아돌프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의 주요 조직자 중 한 명이었다. 1942년 1월, 그는 유대인 문제에 대한 대량학살이 계획되었던 악명 높은 반제 회의에 참가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유대인 말살 계획을 만든 반제 회의에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의장을 맡았으며, 이 기간 동안 독일이 점령한 유럽에서 모든 유대인의 추방과 대량학살을 마무리할 계획을 제시했다. 프라하에서 하이드리히의 암살은 리디체 마을과 레자키 마을을 파괴하는 것을 포함한 체코인들에 대한 살인적인 보복으로 이어졌다.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히틀러의 가장 잔인한 오른팔 중 한 명은 율리우스 슈트라이허였다. 독실한 반유대주의 신문 데어 슈튀르메르의 창립자이자 발행인인 슈트라이허는 헌신적인 사회주의자였으며 우익, 초국가주의, 반카톨릭, 반유대주의 원칙을 열정적으로 옹호했다.

 

빌헬름 카이텔 1938년부터 1945년까지 국방군 최고사령부의 수장으로서 빌헬름 카이텔은 히틀러의 정책을 충실히 지지했다. 그는 많은 피를 손에 묻혔고, 수많은 전쟁 범죄로 이어진 많은 범죄 명령과 지시에 서명했다.

 

요제프 멩겔레 "죽음의 천사"로 알려진 요제프 멩겔레는 아우슈비츠의 공포를 대표한다. 수용소에서 일한 의사로서, 멩겔레는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의학 실험을 수행하고 가스실에서 처형할 죄수들을 개인적으로 선택했다.

 

클라우스 바르비 비시 프랑스의 게슈타포의 수장으로서, 클라우스 바르비는 수천 명의 유대인과 프랑스 레지스탕스 당원들을 강제 수용소로 추방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었고, "리옹의 도살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에른스트 룀 에른스트 룀은 나치당 초기에 중요한 인물이었다. 히틀러의 측근이었던 룀은 당의 폭력 민병대인 슈투르마브테이룽(SA)을 공동 설립했다. 하지만 1933년 이후, 룀과 총통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경쟁자로서 그를 두려워했던 히틀러는 룀을 수십 명의 다른 반 히틀러 세력들과 함께 장검의 밤으로 알려진 사건을 통해 살해했다.

 

하인리히 뮐러 게슈타포의 수장인 하인리히 뮐러(맨 오른쪽)는 또 다른 반제 회의 참석자였으며 홀로코스트 계획과 실행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 속에서 그는 하인리히 힘믈러, 프란츠 요제프 후버(비밀 주 경찰), 아르튀르 네베(범죄수사국),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와 함께 있다.

 

오딜로 글로보츠니크 오스트리아 나치인 오딜로 글로보츠니크는 라인하르트 작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라인하르트 작전은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최소 150만 명을 조직적으로 섬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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