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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박사는 한국의 농업 발전에 헌신한 위대한 농학자

부자공간 2023. 11. 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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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박사는 한국의 농업 발전에 헌신한 위대한 농학자

우장춘(禹長春) 박사는 189848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선 말기의 무신 우범선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우장춘 박사는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921년 도쿄 제국대학 농학부에서 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장춘 박사는 일본에서 종자 개량 연구에 종사하다가,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으로 귀국했다. 한국에 귀국한 후에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 중앙원예기술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의 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우장춘 박사의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다 *****

 

채소 종자의 국내 자급 해결

무균종서 생산으로 6·25전쟁 이후의 식량난 해결

수도이기작(水稻二期作) 연구

 

우장춘 박사는 특히 채소 종자의 국내 자급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우장춘 박사는 일본에서 개발된 신품종 채소를 한국에 도입하고, 한국의 기후와 토양에 맞게 개량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한국은 1950년대 초반부터 채소 종자의 상당 부분을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우장춘 박사는 또한, 무균종서 생산으로 6·25전쟁 이후의 식량난 해결에 기여했다. 무균종서는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지 않은 종자이다. 우장춘 박사는 무균종서 생산 기술을 한국에 도입하고, 무균종서 생산 시설을 설립했다. 그 결과, 한국은 6·25전쟁 이후의 식량난을 극복하고, 식량 자급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우장춘 박사는 또한, 수도이기작 연구에도 크게 기여했다. 수도이기작은 벼를 두 번 수확하는 농법이다. 우장춘 박사는 수도이기작 연구를 통해, 한국의 벼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우장춘 박사의 업적은 한국 농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우장춘 박사는 한국의 농업 발전에 헌신한 위대한 농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우장춘 박사는 1959810일 부산에서 향년 6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우장춘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기념관은 지하 1, 지상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에는 우장춘 박사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는 전시실이 있다. 지상 1층에는 우장춘 박사의 연구실과 실험실이 복원되어 있다. 지상 2층에는 우장춘 박사의 유품과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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