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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도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내 조상도 한국인”

부자공간 2023. 3. 1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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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도'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내 조상도 한국인”

일본의 흙과 나무로 구운 도자기는 조선 백자와는 다르지만, 우수한 품질과 뛰어난 예술성으로 ‘심수관’이라는 이름 아래 세상에 나오고 있다. 학문과 도자기 기술을 습득한 자손에게만 이름과 가업을 물려주는 전통은 그들이 지켜온 것이 조선의 이름임을 증명한다.

 

한편 나라현 아리타로 끌려간 또 한 명의 조선 도공 이삼평은 일본 최초의 자기磁器를 구워 도조, 즉 도자기의 시조라 추앙받고 있다.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행동력에 빚지고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개인을 통해 근대사의 비극을 깊이 실감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생존과 순응 속에 지킨 조선의 이름 남원성 전투 때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군대에 끌려갔다가 가고시마현 근처 시마비라 해변에 떨어진 17개 성의 조선 도공 70명은 조선인 마을을 이루고 4백 년간이나 한민족韓民族의 말과 자부심을 지키며 일본의 국보급 도자기들을 구워왔다.

 

일본 ‘차기 총리’ 아베 신조는 한국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믿으며 독도 해저 측량 소동을 배후에서 지휘한 강경파 아베 신조. 1960년대에 일본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는 총리에 오르게 될 아베에게는 놀라운 출생의 비밀이 있다.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이요, 역시 1970년대에 일본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양자로 가서 성이 바뀌었다)는 ‘조선 계열’ 도공인 심수관 14대에게 자신의 집안이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건너온 한국계임을 고백했다.

 

아베의 혈통에는 한국 핏줄이 섞인 것이다. 아베의 아버지이자 외무대신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도 한국계가 많은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심수관요 접견실에 걸려있는 ‘묵이식지’ 휘호. “말로 하지 않아도, 묵묵히 있어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의미로 사토 에이사쿠가 친히 써준 것이다. 동양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사토는 심씨에게 “내 조상도 한국인”이라고 말했다.“사토씨가 하는 말이 놀라웠어요.

 

나한테 ‘당신네는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묻길래 4백 년 가까이 됐다고 했더니, ‘우리 가문은 그후에 건너온 집안’이라는 거예요. 반도의 어느 고장에서 언제 왔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기네 선조가 조선에서 건너와 야마구치山口에 정착했다는 얘기였지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적극 지지하는 내셔널리스트인 그의 조상이 한국 사람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슬픈 열도?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의 저자 김충식은 지난 28년간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두 차례나 한국기자상을 받은 기자요, 재직 중인 신문사의 도쿄 지사장 시절 한?일 관계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굵직하고 통렬하면서도 일본 사회에 대한 균형 잡힌 직언으로 양심 있는 일본 사람들의 심금을 깊이 울려온 일본 전문가다.

 

그런 그가 김옥균, 역도산, 심수관, 김달수 등 일본 속 ‘한국 핏줄’들의 이야기를 파헤쳤다. 문학청년 같은 감수성과 신문기자의 냉정함 그리고 지식인의 개인과 역사에 대한 탐구적 시각이 엿보이는 열 편의 명名산문은 역사의 빈틈을 완성시키는 비화秘話들을 드라마처럼 흥미롭게 펼쳐 보이며 그 현장만이 전해줄 수 있는 진실의 힘과 회한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저널리스트, 역사를 쓰다 ‘저널journal’이라는 말은 하루一日를 뜻하는 단어 jour에서 왔다. 그날그날의 삶을 반추해내는 일기日記를 뜻하는 저널이 사회의 일기라 할 신문으로 그 뜻을 확장한 것이다. 흔히들 하루의 사건을 좇는 저널리즘은 본질적으로 ‘뿌리’에 약하다고 한다.

 

독도 문제만 하더라도, 단순히 경도와 위도의 국경 측량으로 끝나는 지리학상의 충돌거리가 아니다. 거기에 역사가 있고, ‘제국’ 일본의 음모가 있고, 권력 암투에 지새다 나라가 먹히는 줄도 몰랐던 조선 조정이 있는 것이다.

 

저널리스트가 역사학도가 되고만 연유가 여기 있다. 시마구니 곤조와 투쟁하며 흘렸을 피와 눈물을 찾아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을 천명하라는 미국 의회의 요구에 이어 일본 내부에서도 야스쿠니 신사에 수용된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의 분사分社를 촉구하고 있다.

 

이미 동아시아에서 ‘친구가 없는 고독한’ 일본에게 태도를 바꾸라는 나라 안팎의 바람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한?일 관계는 독도를 둘러싼 갈등으로 또 한 번 몸살을 겪었다. 독도 문제는 한?일 관계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마구니 곤조島國根性’, 흔히들 섬나라 근성이라 부르는 일본 고유의 배타적 기질은 이웃나라, 특히 우리와 계속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시마구니 곤조가 “과학도 이성도 타산打算도 아니다. 다분히 감정과 비논리가 섞여있는 집단정서다. 독도나 야스쿠니 문제에서 입증되듯이 논리적인 반론이나 이웃의 충고로 바로잡힐 성질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웃이 지적할수록 반발심을 품고 더욱 배타성을 띠며 단결하고 나올 우려조차 있다”고 지적한다.

 

이방異邦에서 온 도래인에게 정체성을 버리고 동화하도록 강요하는 시마구니 곤조와 투쟁하며 재일 한국인이 흘렸을 피와 눈물, 역사와 지정학의 시야에서 한?일 관계의 과거에 맺힌 은원恩怨을 뒤돌아보면서,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는 작업은 흥미진진한 개개인의 운명과 삶을 조명하면서 끈끈하게 이어지는 운명과 같은 한·일 간 역사의 맥을 바로 짚고 미래로 이어가려는 힘 있는 의지로 일관되어있다.

 

책은 김옥균이 암살되기기까지 마지막 나날들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의 나라 정부에 운명을 저당 잡힌 10년 유랑정객이 처한 막다른 상황은 한?일 사이 공존과 침략의 긴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옥균의 절박한 심정을 생생히 그릴수록 ‘모략’이 없어 현실을 읽지 못했다는 냉정한 평가는 한층 빛을 발한다.

 

투쟁과 자존,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북한 출신의 김신락은 일본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한국 출신임을 철저히 숨기고 일본의 영웅 역도산으로 살아야 했다. 두 가지 투쟁이 있다.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생존 투쟁과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자존의 투쟁.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외상으로서 패전 후 종전 작업에서 천황제를 지켜낸 인물로 일본인의 추앙을 받고 있는 도고 시게노리는 얄궂게도 조선 도공의 후예다.

 

조선인 김윤규로 태어난 대중작가 다치하라 세이슈는 탁월한 중세 일본어 구사로 일본 대중문학 최고의 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역도산, 즉 함경도 출신의 씨름꾼으로 스모 선수로 활약하던 김신락은 전후 프로레슬링계에 투신, 패배감에 젖어있는 일본인들에게 미국 선수들을 링에 메다꽂는 장면으로 승리감을 안겨주었다. 생존을 위한 그들의 변신은 차별의 벽이 얼마나 높았는지 반증한다. 자존을 위한 재일 한국인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법적인 차별 이상으로 ‘열등한 민족’이라 구박해도 반박 한 마디 대꾸할 수 없던 침묵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김달수와 이회성은 글을 썼다. 침묵을 깨고 재일 한국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만으로도 일본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김달수는 또한 고대 한?일 역사를 파헤쳐 황국사관에 젖어있던 일본인들에게 “일본은 한반도계가 세운 나라”라는 충격을 던져주며 재일 민족문화 운동을 이끌어갔다. - 교보문고 책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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